11월 25일 수요기도회 참고자료 및 영상 | 운영자 | 2020-1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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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5일 평동교회 수요기도회 참고자료. 제목 : 영성훈련 7. 아브라함의 영적 훈련 2
본문 : 창세기 20장 1~7절 (창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반복되는 아브라함의 실수 – 온전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생각하면서.... 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걸어간 신앙의 여정은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에 있어서 참고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다시 한번 그의 삶 가운데 있었던 한 단편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해야 할 영적 훈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과연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굳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부르셨을까요? 저는 그중의 하나가 그에게 있는 적지 않은 실수들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결함이 있었습니다. 1) 창세기 20장의 문맥을 살펴보십시오.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역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탄생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21장은 그래서 사라가 이삭을 낳은 기사로 시작합니다. 이를 앞두고 하나님은 17장에서부터 아브라함을 여러 가지로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아브라함은 어떤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2)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면 그동안의 여러 과정들을 통하여 그가 잘 훈련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소돔에서 겨우 구원받았던 롯에 비하자면 아브라함은 달라도 뭐가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20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3) 아브라함의 실수와 관련되어 본문에는 그랄 왕 아비멜렉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도 아브라함 못지않은 잘못을 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생각하면 아브라함과는 결이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차이들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상반된 감정일 수 있습니다. 비슷비슷해도 분명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 어떻게 해결하는 지가 관건입니다. 2. 사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간의 진실공방은 두고 두고 생각해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두 사람의 사정을 각각 생각해 보면 둘 다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처음부터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은연중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 점에서 아브라함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함부로 자기 여인이 아닌 다른 여인을 데려가는 것도 결코 떳떳한 것은 아닐 겁니다. 두사람이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하는 말은 달라도 내용과 취지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 사이에서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 다른 논의를 하기 전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던 사라입니다. 당시 사라의 나이는 89세였습니다. 이미 본인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사라는 이미 임신할 수 있는 나이가 훨씬 지났던 상황이었습니다(18:12). 하지만 20장의 사라는 다른 남자가 탐내어(?) 데려가고 싶을 만큼 달라져 있었습니다. 분명 그녀의 몸에는 지금 아니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1) 사라를 데려간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그에게 하셨습니까? 이런 경고에 대하여 아비멜렉은 어떻게 반발했습니까? 그가 이야기하는 온전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아비멜렉의 하소연을 들으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분명하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 자초지종을 알게된 아비멜렉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그가 아브라함을 불러서 한 말을 살펴보십시오. 책망하듯 꾸짖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이런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 있으면 사실 아비멜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아비멜렉은 결과적으로 금번에 벌어졌던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까? 그는 먼저 아브라함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가 하면 사라에게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이 두가지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해결방식은 무엇이었습니까? 4)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해결방식에 비하면 다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금번 사건을 통하여 더욱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분명히 아브라함도 잘한 것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는 점에서 더욱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번 일로 인하여 크게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 사실 거의 똑같습니다. 다를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에는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비밀입니다.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하루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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