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_ 잔치를 베푸는 가정 | 교육본부 | 2009-06-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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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속회공과 잔치를 베푸는 가정 ? 마음 열기 (10분, 공과참조) ? 묵도, 찬송, 기도 (10분, 공과참조) ? 말씀 / 요한복음 12:1-3 예수님이 유월절 엿새 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에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집에 가시자, 그곳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슬픔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다니 동네에 예수님이 가시니, 잔치가 벌어지고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 중에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나드’라는 비싼 향유를 한 근이나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1. 잔치의 중심, 마리아의 이유 : 잔치 가운데에서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은 가룟 유다가 300데나리온을 언급한 것만 보아도(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마리아가 귀한 것을 깨뜨리면서 예수님께 나아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본문의 앞에 나오는 이야기들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보다 한 장 앞서 있는 11장에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나사로의 몸져누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이 병은 죽게 될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 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얻을 것이다(11: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을 맞이한 나사로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찾으며 슬퍼합니다. 눈물 젖은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설령 죽는다 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죽은 지 사 일이나 되어 냄새가 심하게 나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 무덤에서 깨어 일어나 나아옵니다. 죽은 사람이 천에 둘둘 말린 채로 무덤에서 걸어 나온 이야기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오늘의 잔치가 누구를 위한 잔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본문의 상황 속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은 자리에는 나사로도 있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예수님보다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에게 쏠렸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는지, 죽었을 때는 어떤 상태였는지, 죽은 다음에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땠었는지…. 사람들의 질문과 관심은 더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마리아가 그 자리 가운데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매우 값진 나드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마리아의 이 행동을 지켜보진 않았겠지만, 어디선가 흘러오는 향기를 곧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맡게 되었을 것입니다.“이건 무슨 향기지? 음식냄새가 아닌데? 어디서 나는거야?”그리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잔치의 중심이신 예수님께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마리아는, 이 잔치가 예수님을 위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옥합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잔치는 비로소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2. 한 마음을 품은 가정 : 예수님을 위해 잔치준비를 하던 마르다와 나사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마리아를 나무란다면 가룟유다보다는 한 가족인 언니나 오빠가 나무라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기에, 마리아의 섬김을 보면서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은 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귀한 것을 내어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시간과 물질과 건강을 다 드리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유무에 따라 마리아가 드린 나드 한 근은‘아름다운 행위’가 되기도 하고,‘낭비’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한 유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마리아의 행동이 어이없는 혹은 정신나간‘낭비’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마리아는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는구나!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사로와 마르다는 마리아와 한 마음을 품고, 마리아의 헌신에 함께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베다니의 나사로의 가정과 같아야 합니다. 아무리 슬픔이 가득하고, 상황과 조건이 어려움으로 가득찼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가정에 모시고, 그 분을 중심으로 하는 잔치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아까울 것 없이, 온 가족이 하나 되어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의 일에 힘쓰고, 교회와 성도들과 이웃들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교인들이 저를 찾아와 신앙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오늘밤에 죽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글쎄요. 저는 늘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럼에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물론입니다. 죄를 지었지요.”“그렇다면 그 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글쎄요. 저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그 사실이 어떤 도움이 될까요?”“글쎄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이렇게 저는 그들을 밀어붙이고 연이어 질문을 던지며 따져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종류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용서를 믿고 있으며, 용서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 안에 그리스도는 거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상당부분 구약시대 성도들의 수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했지만 이들은 그분의 필요성 자체를 전혀 못 느끼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자유로워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하신 일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의 속죄, 즉, 십자가의 죽음과 찢기신 몸과 피 흘림을 찬양해야 합니다. 부흥이 임한 교회들은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의 피를 내세웁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의 피를 힘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히10:19). 성령은 바로 이것을 높이십니다. 바로 이것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만인을 위해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중추이자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5)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6)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17)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우리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고후5:21). 교회가 알고 있는 설교자 중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이것이 그가 내세우며 자랑했던 것이었습니다. 부흥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와 삶의 중심에 그 분을 다시 모시는 일입니다. 부흥은 교회와 삶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찬송하게 합니다. 그를 높이지 않는 기독교, 그를 위해 살지 않는 기독교, 그를 증거하며 살지 않는 기독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 마틴로이드존스,『부흥』중에서 - * 나눔을 위한 질문 - 마리아처럼, 나의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 일이 있었습니까? 있다면 나누어주십시오. - 혹시 우리 가정 안에서,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이와 한 마음을 품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까? ? 헌금, 빛으로 살기 (공과참조) ? 중보기도 (공과 참조) - 나눔을 통해 알게 된 서로의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 교회 내 기도제목 1. 조합과의 보상협의 과정에 주님이 개입하시고 함께 하셔서 주님의 교회를 새롭게 신축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환경과 여건을 이루어 주시고 협상과정에 참여하는 교회의 대표자들의 마음에 용기와 지혜를 주사 학자의 혀로 협상과정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사업승인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있사오니 사업승인 이후에 진행될 모든 과정과 절차를 교회가 잘 인지하면서 대응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교회를 지키시고 도와주옵소서. 2. 담임목사님을 위한 기도 - 성령님께서 피곤치 않고 힘들지 않도록 영육간 힘을 주사 강건케 하시며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믿음의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주소서. - 사무엘과 같은 기도로 하나님께서 큰 배경의 힘이 되어주시고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성도들을 통합시키시며 다윗과 같은 카리스마로 평동교회를 이끌어 나가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성령님께서 함께 하소서. - 주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에 사로잡혀 꺼지지 않는 불을 더욱 타오르게 하사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목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성도들에게 잘 전할 수 있는 극상품의 말씀을 주시고 언제나 새롭고 창조적인 일을 하시도록 영감과 영력을 주시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목회가 되게 하소서. 3. 주님의 피와 살인 말씀을 먹고 사람으로 하나 되지 않고 성령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재목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주권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포기하여 주님만이 주관하고 이끄시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것입니다. 4. 환자들을 기억하사 이전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붙드시고 은총을 더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을 은혜로 채우사 온전한 주님의 성전이 되게 하소서. 5. 무더위에 성도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지켜주소서. 직장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사 지혜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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