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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2일 주일2부예배 -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는 강림절 | 김종윤목사 | 2018-1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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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8:21-35절 개역개정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는 강림절
어느덧 달력이 한 장 남았습니다. 달랑 남은 시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시나브로 이어져 온 올 한해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어떤 것은 아쉽습니다. 다르게 할 수 도 있었으니까요. 또 어떤 것은 고맙고 대견합니다. 어찌되었건 중간에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그래도 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속절없이 공평합니다. 그래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더 중요한 겁니다. 가장 좋은 마무리는 감사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수고했고 애썼다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12월을 시작하면서 교회는 기다림의 절기인 강림절을 시작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기다리는 이 4주간 교회는 상당히 중요한 몇 가지를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다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해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
오늘 본문은 다소 뚱딴지같은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베드로 스스로가 질문을 하고 또 거기에 스스로 대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결정적인 답까지야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묻고 스스로 답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한 일곱 번쯤 용서해주면 잘하는 것이겠지요? 베드로는 이런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주님 이만하면 충분한 거겠지요?”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만 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문제는 횟수가 아니었습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씩까지라도 여기에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있습니다.
∙ 만 달란트 빚진 자 – 그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어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결산을 앞둔 종 가운데 참 문제가 많은 한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종은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라고 하는 금액은 수치로 환산하면 16만년을 매일 벌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액수입니다.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실 그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마 어마한 금액의 빚이 아닙니다. 그 빚을 대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도 없는 큰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에게는 그렇게 큰 은혜를 받을만한 노력을 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은혜는 받고난 다음이 더 중요한 겁니다.
∙ 각각 마음으로부터 –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는 강림절
용서는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용서란 또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거저 받았으니 또 거저 해주어야 하는 것이 용서인 겁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란 힘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충분한 힘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멀리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보아야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을 위한 더 풍성한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을 배우는 강림절, 용서의 신비와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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