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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3일 2부예배 - 불의를 이기는힘
김종윤 목사 2019-11-03 추천 0 댓글 0 조회 779
[성경본문] 마태복음26:57-68 개역개정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불의를 이기는 힘

 

한때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미국에서 10만부 정도 팔린 책이 우리나라에선 무려 200만부 가량이 판매되었다고 하니 가히 열풍이라고 부를 만 했습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부분 정의와 공정이라고 하는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정의보다는 불의가 공정보다는 불공정의 패러다임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합니다. 이런 가운데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고민이 되지만 결코 패스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불의로 가득찬 시대를 살아가신 주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가니 – 끌려가도 아직 패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칼과 몽치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힘에 의하여 이리 저리 끌려간다고 하는 것은 기분 나쁜 경험일 것입니다. 더욱 그렇게 끌려가고 있던 길의 마지막에 마주해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십자가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또 절망적이었을까요?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감당해야하는 이에게는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끌려간다고 하는 것만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아직 패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 많다고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도 불의도 그냥 혼자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의와 불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와 메카니즘입니다. 이 둘을 가능하게 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우리는 결국 정신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흐름 속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맙니다. 예수께서 사로잡히시던 날 대제사장은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숫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정의라고 하는 이름 대신 숫자로 포장된 명분에 더 끌립니다. 하지만 꼭 많다고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거짓에 기반하여 세워지는 숫자는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믿음은 다수결의 원리가 아닙니다.

 

∙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 진짜로 살면 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침내 자신들의 의도대로 예수를 죽일만한 명분 하나를 건져낸 대제사장은 기다렸다고 하는 듯이 사람들의 생각을 물으면서 사형을 언도해 버립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역시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조롱하고 비웃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선지자 노릇이나 하라고 하면서 너를 친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이 선지자 노릇이나 하라고 하는 표현이 마음에 남습니다. 노릇이나 하라니요……. 이것은 적당하게 흉내나 내다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것도 진짜로 해야지 그런 식으로 노릇이나 하려고 하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짜니까 노릇이라도 하는 겁니다. 진짜는 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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