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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 17일 주일예배설교 | 김종윤목사 | 2019-1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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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시리즈 - 최선의 선택 최악의 선택
선택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하는 광고에서처럼 선택은 한번 이었지만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두고두고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곧잘 실수하고 잘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결코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 그것은 참 가슴아픈 일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가룟유다였습니다. 그의 선택을 통하여 무엇이 최고의 선택인지 생각하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최선의 선택 –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해도 선택의 순간은 긴장됩니다. 그런 선택 중에는 얼마든지 나중에 바꿀 수 있는 선택도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더욱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와 기준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도 나름 최선의 결정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들은 형식적이었지만 함께 결정하였고 자신들이 어려운 일 수고롭게 책임지지 않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최악의 선택 – 유다의 비극은 배신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입니다.
예수를 배신하고 은 30에 팔아버린 가롯유다도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그냥 팔아넘겼으면 그만이지 뭘 생각할게 있을까 하지만 가룟유다는 분명 예수님이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 의해서 재판을 받고 정죄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스스로 뉘우칩니다. 아마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받았던 은 30을 다시 돌려줍니다. 하지만 가룟유다의 그런 뉘우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그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그의 비극은 배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비극의 시작은 바로 그의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 최고의 선택 – 감사잘에 배우는 최고의 선택을 위한 기준들
‘유다야, 집으로 오너라.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고 있는 책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하나님이 용서 못할 죄란 없다’라고 하는 다소 과격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가룟유다와 같은 어떤 긍휼도 베풀기 쉽지 않은 이들까지도 품어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합니다. 덕분에 추수감사주일에는 적절치 않은 본문으로만 여겼는데 역설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위한 기준들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묻게 되었습니다. 분명 세상은 뉘우치는 유다의 회개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은혜 안에서는 나의 최선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선택이 가능해 집니다. 부담을 덜어내는 식으로 던지듯 선택하지 마십시오. 부담감도 감당하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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