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온라인주일예배 설교 | 김종윤 목사 | 2020-1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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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해의 마지막이 되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이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아쉬웠던 순간을 위로하고 기뻤던 일들을 감사하며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질 텐데 이번 연말은 그러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벌써부터 정부는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라며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의 위협 속에 연말연시의 풍속조차 바뀌고 있습니다. 더욱 지난 주간 우리 교회에는 안타깝게도 두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이런 저런 이유들로 마음과는 다르게 보내드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 시체를 다락에 누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삶의 사건들 가운데 죽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게 다가옵니다. 특히 욥바의 다비다같은 선행과 구제가 많았던 삶을 살아간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그가 생존해 있을 때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다음에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비다의 죽음은 인간 실존의 어쩔 수 없는 결론이라고 하지만 생전에 남겼던 많은 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의아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은 슬퍼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은 슬픔 속에서도 행한 제자들의 그런 간절함을 결코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 역사와 사건의 시작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다비다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 당도한 베드로 사도에게 그녀가 생전에 힘썼던 섬김과 나눔의 흔적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삶이 사그라진 뒤에 생전에 힘썼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증거 하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나간 그런 증거들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거기서 끝낼 수밖에 없었다면 베드로는 당연히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울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난 뒤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역사와 사건의 시작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연말 연시 우리가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부르십시오.아무리 깨끗하게 씻었다고 하여도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제자들은 그녀를 다락에 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기도한 다음 그렇게 죽어있는 그녀를 향하여 이름을 부르면서 일어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베드로의 이 말에 죽은 다비다가 반응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숨진 다비다는 자신을 부르는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눈을 떠서 그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까요? 이런 경우가 성경에는 몇 번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베드로를 통하여 이런 역사가 일어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님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이 피어나듯 새로운 회복의 역사는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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