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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주일 말씀 김종윤목사 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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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dchurch.net/bbs/bbsView/7/6042209

언제부터인가 드라마 제목에 “슬기로운 ○○생활”이라고 하는 식의 표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드라마의 내용들을 알 수는 없지만 기획의도와 방향만큼은 대부분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마지못해 억지로 버티거나 끌려다니지 말고 이왕이면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임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있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분별하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재능이 슬기라는 점에서 슬기로운 생활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생활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배우기 시작하는 교과목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어떻게 믿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바울이 세 번째 전도여행을 출발하면서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던 것은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이미 믿음에 이른 이들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믿고 구원을 얻은 뒤에도 우리는 일정한 시간을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고 있는 삶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계속되는 생활 속에서 베어 나와서 확인되어야 하는 고백이요 증거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어떻게 믿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 요한의 세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차례로 다니면서 제자들을 굳건하게 했던 바울이 마침내 에베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일단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생활은 바울에게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들은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란 자신의 뒤에 오시는 메시아를 위하여 광야에서 길을 준비했던 회개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요한은 오신 주님은 보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의 세례만 알고 믿음에 이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 오늘도 믿음의 역사는 성령이 임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부활도 알 수 없었으니 당연히 오순절 임하신 성령의 역사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울이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제자들과 바울 자신의 삶과 믿음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은 이들이 무슨 수련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변화되지 못했던 까닭은 무슨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에 사로잡히고 충만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믿음의 역사는 오직 성령이 임해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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