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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주일예배 김종윤 목사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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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2022. 6. 12)

 

때로 일정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생각해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극들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에는 자극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극이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자발적인 반응을 하게 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자극 자체에만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 한 번 길들여진 자극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존의 자극만 가지고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다분히 충동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는 충동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십시오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던 바울은 자신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걱정하고 있던 교회의 염려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따지지 않고 교회가 제안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바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성전에서 결례를 지키고 있었던 바울을 보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성전에서 하나님도 아니고 자신도 아닌 그들이 미워하는 바울을 보았습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주목해서 보는 것에서 문제는 자라납니다. 충동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로 보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성전에서 바울을 본 이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도우라고 하면서 바울이 각처에서 율법을 비방하는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비방하면서 그런 바울이 이번에는 성전에 들어올 수 없는 헬라인을 데리고 와서 거룩한 곳을 더럽히게 되었다고 소리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드로비모와 함께 있던 곳은 성전이 아닌 시내 다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실이 아니라 바울을 고소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확 사실관계 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렇게 몰아간 것입니다.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실수하지 않게 됩니다.

 

∙ 문들이 곧 닫히더라 – 문을 닫는다고 해결되거나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에만 귀를 기울였던 이들은 충동적으로 바울을 붙들어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또한 성전의 문을 닫아걸게 되었습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불미스러운 일로부터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방안이었겠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문을 닫아건다고 해서 성전을 과연 거룩하게 지킬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도 또한 나 자신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를 지으신 그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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