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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주일) 다르게 살게 하소서 김종윤 목사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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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6:27-38절 개역개정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복과 4화를 선포하신 주님은 이제 어떻게 하면 화를 피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가르치고 계십니다. 결국 문제는 삶입니다. 삶으로 증명할 수 없는 지식이나 주장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를 바꾸는 것은 현란하고 탁월한 언어로 만들어진 구호가 아닙니다.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은 말들은 결국 잠시 귓가에 맴돌다가 사라지고 마는 의미없는 말들입니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아무리 요란해도 시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말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만 가득해서는 삶은 달라지지 않고 머리만 무거워지게 됩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요란한 말들이 가득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너희 듣는 자들에게 내가 이르노니 믿음도 행위도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말하는 사람과 함께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길 내용과 그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 누가 듣던 그냥 해대는 아무말 대잔치와 같아서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달랐습니다. 그 전체 내용과 함께 살펴야 할 것은 맥락입니다. 본문은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나란 앞에서 나온 내용과는 결이 다른 무언가가 이어질 것을 뜻합니다. 앞에 소개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보십시오. 답답하고 힘들 때에는 잠시 멈추어 서야 합니다. 그냥 덮어놓고 앞으로만이 답은 아닙니다. 때로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멈추어 서서 돌아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야 달라집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소위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은 그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특히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와 가깝고 언제든지 자기 편이 되어줄 사람에게는 특히 잘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이 세상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다르게 살아가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따라 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더욱 한 쪽 뺨을 치는 자에게 나머지 한 쪽 뺨도 돌려대고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까지 준다고 하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억지로 이 악물고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이와 관련해서 본문은 몇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은혜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은혜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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