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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함께함의 의미 김종윤 목사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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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던 그 때에도 하나님은 혼자있는 것을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결국 혼자 사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 말도 사실은 함께하는 관계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이라면 오롯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분명 ‘선택된 혼자 있음’을 뜻하는 고독과 ‘강요된 혼자 있음’을 뜻하는 외로움은 같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함께함’에 대한 기준과 가치도 역시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적 편향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 함께 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와 함께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함께함의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 답답해도 함께함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화평과 하나됨이 아니라 다툼과 분쟁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된 말씀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특정한 단어와 어구(워딩)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것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그 속 마음과 의중입니다. 정작 당사자의 속에 담겨있는 마음과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면 전혀 생각지 않았던 오해를 하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던지려고 하는 불에 대한 말씀과 함께 또한 자신이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하십니다. 답답한 이유는 그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 무엇을 위한 분쟁인지 먼저 살피십시오.   


주님이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함께함의 의미는 단순하게 같은 곳에 있다고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여러 가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장소와 시간의 한계는 얼마든지 극복할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거리와 시간의 문제는 더 이상 함께함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분쟁의 의미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함께함의 의미는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더욱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분쟁은 그 자체로 파국을 말하거나 단절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침내 하나되기 위하여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더욱 단호하고 분명하게 정리하기 위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 길에서라도 화해하기를 힘쓰십시오.  


함께함의 의미를 가르치시면서 주님이 언급하신 내용 중에는 구름의 움직임과 바람의 결을 통해서 그날과 다가오는 시간의 날씨와 기상을 분간하고 대비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는 함께함의 의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특히 주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일상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보면서 그 이면에서 흐르고 있는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응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정당함을 어필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올바름은 관련된 이들이 적극적으로 분별하고 마침내 그에 걸맞은 반응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발하는 자와 법관에 갈 때에도 길에서라도 돌이켜 화해할 수 있어야 후에 직면할 어려움을 미리 피할 수 있습니다. 함께함을 위하여 값을 치르는 것은 미룰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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