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주님이 도전하신 지혜로운 삶 | 김종윤 목사 | 2025-09-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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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로 알려진 오늘 본문은 해석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윤리와는 전혀 맞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옳지 않은 일을 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청지기가 했던 이런 일들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말해지기 시작한다면 정상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사람들은 정말 바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런 말도 안되는 비유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우리도 참 괴로운 일이지만 정말 이런 못된 일을 한 청지기를 칭찬해서라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있는 우리를 일깨우시려고 하는 주님도 참 힘드셨을 겁니다.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 아무리 망막하고 답답해도 해야할 일을 알면 됩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청지기는 분명 못되고 나쁜 청지기였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인지(?) 이 청지기의 죄는 주인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를 불러 자신에게 들려온 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나쁜 일을 할 청지기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소유를 맡기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걱정했던 청지기는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을 또 벌이고 맙니다. 비유의 반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가 한 일을 지혜롭게 판단하며 칭찬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칭찬한 것일까요? ∙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 지혜로운 일처리가 살 길을 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지기가 한 일은 잘했다고 칭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이렇게라도 깨우치려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비유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류는 청지기 중에서 착하고 맡은 재물을 잘 관리하거나 나쁜데 재물까지 엉망으로 관리하는 부류가 아닙니다. 비유에서 대비하고 있는 부류는 착한데 재물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이들과 나쁜데 재물은 잘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이 말씀은 얼마나 빛의 자녀들이 세상의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지 못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비유까지 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지금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혜로운 일 처리가 살길을 엽니다.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지혜로운 일 처리는 무엇일까요?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는 끝까지 불의했습니다. 주인이 그에게 맡겼던 소유를 마음대로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재물이 기록되어있는 장부에까지 손을 대어서 자기 멋대로 고쳐서 자신의 이권을 최대한으로 얻어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청지기의 불의함이 아니었습니다. 비유는 이런 청지기의 불의함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주인의 마음과 판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이들에게도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 재물은 분명 없어질 때가 올 터인데 과연 그 다음은 준비하고 있는가? 올바른 준비를 위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기준은 무엇인가?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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