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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28일 주일2부예배 - 세금 내는 것처럼 신앙생활하지 마라 | 김종윤목사 | 2018-1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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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7:24-27절 개역개정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세금 내는 것처럼 신앙생활하지 마라"
교계에서 최근 들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외쳤던 개혁적 요구들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해도 교회의 곳곳에서 베어 나오는 냄새는 부패한 자본주의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이미 많은 영성학자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이 모든 비리와 타락의 이면에는 돈, 성 그리고 권력이라고 하는 중요한 주제들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 다시한번 우리들 자신을 먼저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이고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겠습니다. 처음부터 틀어지고 어긋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순수하고 치열했으며 겸손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때가되면 찾아오는 이런 저런 개혁의 메시지들이 실은 더 문제인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은 예방주사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다.
∙ 반 세겔의 신앙? - 신앙은 세금을 내는 것처럼 하는 게 아닙니다.
실은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다시 또 난감했더랬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인데 그에 걸맞는 내용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반 세겔은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빈부의 차별없이 동일하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성전세를 뜻합니다. 성전세는 로마에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국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세는 출애굽기 30:13 이하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자발적으로 납부해야하는 종교적 세금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국세를 걷었던 공식적인 세리와 같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어서 납부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촉장 같이 들려온 소리에 베드로는 두말하지 않고 걱정말라고 낼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참신앙은 세금을 내는 것처럼 하는 게 아닙니다.
∙ 타인과 아들의 차이 – 아들은 세를 면하리라. 아들의 믿음을 회복하는게 개혁입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예수님은 밖에서 세금 걷으러 왔던 이와 대화하던 베드로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지요. 우선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 생각은 어떠하냐고 하시면서 물으십니다. 질문은 세상임금이 세금이나 관세를 누구에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은 자기 아들과 타인을 콕집어서 어떤 사람들이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권세를 가진 자녀로 그 모든 것을 출입하는데 있어 요금을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런 질문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아들과 타인의 차이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요금을 내지 않아도될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 감당하기로하면 해결할 길을 허락하십니다.
주님의 처방은 단순하게 아들과 타인을 구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연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아들이지만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그들이 오해하게 되고 나아가 실족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생각한다면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무시하면 그만이고 내 입장만 고집하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처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들이 여기에서 배워야할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당연한 자기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해야할 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렇게 손해보기로 작정하고 감당하기로 하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 버린 낚시대를 다시 잡아야 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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