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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14일 주일2부예배- 계명이 아닌 사랑으로 사십시요 | 김종윤목사 | 2019-0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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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2:34-40절 개역개정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계명이 아닌 사랑으로 사십시요 어느덧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주일 직전의 일주일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면서 그동안의 모든 사순절의 과정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특히 이 고난주간에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 고난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미를 묵상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어떤 이는 자신이 즐겨하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절제하는 경건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또 어떤 이들은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그런 훈련들의 효과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더욱 신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행위 자체와 함께 그것을 행하는 이의 마음 자세와 태도에 의하여 사뭇 다른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신다고 믿습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과 섭리를 경험하게 되는 한 주간 되길 기도합니다. ∙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크기를 따지기 시작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사두개인들이 제기했던 부활에 관한 난처한 질문을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한 율법사가 다시 또 예수를 시험하려고 질문하는 모습이 소개됩니다. 이번에는 어느 계명이 크냐고 하는 비교적 간단한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은 간단했지만 그 배경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하나의 전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명을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계명은 동일할 수도 없고 동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은 크고 중요한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어떤 것은 비교적 작고 중요하지 않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또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크기를 따지기 시작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입니다. - 건강하고 온전한 사랑이 문제를 풉니다.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의외로 지체하지 않으시고 바로 대답을 하십니다. 분명 주님은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이고 둘째는 무엇인지 분명하고 딱부러지게 말씀하셨습니다. 전 처음에 첫째와 둘째라고 이야기 하셔서 단순하게 그런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묵상하다보니 주님의 대답에서 우리가 먼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은 첫째 둘째를 따로 말씀하고 게셨지만 실은 이 둘은 각각 따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그렇게 적당하게 일부분만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반쪽짜리가 아니었습니다. 마음과 목숨 그리고 뜻을 다해야만 하고 너와 나를 결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게 사랑이었습니다. ∙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계명이 아닌 사랑으로 사십시오.
주님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강령(綱領)」에 해당하는 「크레만뉘미」라고 하는 원어는‘어디에 매달려있다. 걸려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은“하나님과 예언서의 모든 것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이 말씀이 모든 율법들이 이 두가지 계명에 달려있으니 다른 것은 필요없고 이 두 개의 계명만 똑바로 지켜라 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주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많은 계명을 지키느라고 힘들이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이 두 개만 지켜라 그러면 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계명보다는 사랑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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