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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21일 주일2부예배 - 매일 증인 되리라 | 김종윤목사 | 2019-0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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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증인 되라라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오랜 기간동안 금식과 절제로 경건훈련을 하면서 신앙의 각성을 위한 기회로 삼아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란 주제로 새벽기도회를 진행하면서 믿음의 핵심이 앞서서 가신 주님을 따르는 것에 있음을 묵상해왔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부활의 기쁨과 은혜를 지역의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부활란을 비롯한 작은 나눔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한 미가엘 찬양대에서 준비한 부활절 칸타타인 증인들의 고백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하여 주님의 부활이란 메시지를 나누고자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부활이 오늘 지금 나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킵니까?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내용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에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면 기독교는 달리 은혜받을 곳이 없습니다. 내앞에 있는 위기와 모든 난관과 시련에 대하여 주님이 지신 십자가와 또한 주님이 이루신 부활의 사건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기독교는 결코 따라서는 안될 진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난에 대한 답입니다. 또한 부활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낙심과 절망에 대한 답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고 상황이 바뀐다고 하여도 결국 십자가와 부활을 외칠 수 있어야 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은 교회가 아니고서는, 성경이 아니고서는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 부활은 관념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 왜 오늘 증인이 필요한 겁니까?
부활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란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실재에 있어서는 부활이란 낯설 뿐만 아니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도 주님의 부활 소식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에 따르면 예수를 죽였던 이들이 먼저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관심도 갖고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제자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예수의 부활을 준비하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소심하고 형편없었던 제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그렇게 바뀐 증인들이었습니다.
∙ 매일 증인 되리라 – 어떻게 하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모두들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다고 장담 했던 베드로마저 주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할 정도로 약골들이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는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지만 다 큰 어른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일입니다. 더욱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증인이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경험한 분명하고 확실한 체험과 증거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겁니다. 베드로의 삶을 바꾸어 놓은 그 사건이 오늘 우리들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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