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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오전설교
김종윤 목사 2020-09-20 추천 0 댓글 0 조회 570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재 확산으로 인해 현장예배 대신 온라인예배를 드린 지 말입니다. 이번이 두 번째라 그래서 일까요? 아니면 이제는 이런 비대면 상황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대부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새로운 생활 (New Normal)은 이렇게 이미 시작되었고 광범위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옷을 새것으로 한두 번 갈아입고 이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한두 번 먹는다고 새 삶이 시작된 것은 아닐 겁니다. 새날은 오로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될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증거의 장막이 있으니 – 장막을 거룩하게 하는 힘은 장소가 아닌 증거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한 지적인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그리고 그 내면의 중심이 신앙생활에 관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시대에는 신앙생활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이란 일상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장소였고 그곳에서의 행위를 특별하게 만드는 종합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성전 신앙의 체계를 이룬 뿌리는 광야에서 시작된 증거의 장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그 백성들이 척박한 광야를 지나면서 증거의 장막을 중심으로 신앙의 체계를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장막을 거룩하게 하는 힘은 장소가 아니라 바로 증거에 있었습니다.

 

∙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 움직이는 것은 사랑만이 아닙니다. 믿음도 움직입니다.

그래서 증거의 장막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던 그 백성들의 여정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떠돌이 같았던 광야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장막을 함께 가지고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 장막은 성막이란 이름으로 지역의 거점을 두고 수시로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막은 그 본연의 의미 대신 그 자체로서 특별한 힘을 가진 것처럼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심지어 적군들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움직이는 것은 사랑만이 아닙니다. 믿음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 – 내 것을 내려놓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다윗의 때에 와서 성막은 특별한 의미를 담은 독자적인 건물로서 변화되었습니다. 다윗의 첫 마음과 그 의도는 이미 하나님께서도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처소로서 집이란 형태로 건물로서의 성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이전의 장막이 가지고 있었던 상당히 중요한 특징 하나가 결정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대신 웅장한 건물 외관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가치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건물로서의 성전이 등장했던 처음부터 하나님은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라고 하신 것이 그 뜻이었습니다. 성전 신앙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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