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온라인예배 | 김종윤 목사 | 2022-0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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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이 자자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나마 쉬워서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 자체가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묵상은 고사하고 머리만 아프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다고 합니다. 우선 갑작스럽게 어렵게 해드려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작전에 실패하면 용서를 받지만 배식에 실패하면 결코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동행 답지를 제출하신 분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다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해보고 도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은 것은 결코 그냥 얻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훈련은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절대로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려워도 하다보면 쉬워집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 무엇에 사로잡히느냐 따라서 나아갈 방향이 달라집니다.
마케도냐 지역에 남아있었던 바울의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이 있던 고린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외롭게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던 바울은 돌아온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복귀와 합류는 바울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에 있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무엇에 사로잡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붙잡는 그것은 결국 우리를 그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를 꿈꾼다면 먼저 내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 힘들고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더욱 담대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반대와 비방이 더욱 분명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기 시작한 이들은 다름 아닌 바울과 같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 앞장서 바울의 증거를 비방하고 대적했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경험과 지식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되도록이면 일이 술술 풀리길 바라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어쩌면 무슨 일이든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 막힌다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십시오.
그동안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먼저 증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전에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바울은 회심한 후 같은 유대인들을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까지 어디를 가든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보다 적극적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의도하던 길이 막힐 때 우리는 속이 상하고 어렵습니다. 때로는 너무 상심해서 다른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길이 막힌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아닌지 기다리면서 새롭게 도전하고 모색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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