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주일말씀 | 김종윤 목사 | 2022-0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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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위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준비하고 있어도 막상 위기 앞에서는 두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되도록 커다란 위기 없이 지나길 바라는 것이 모두의 희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언제나 생각지 못한 순간 찾아오는 위기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위기로부터 안전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도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위기의 순간으로부터 지키시기도 하지만 때로 그들에게 예상할 수 없는 위기를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위기는 말 그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이루고 경험하게 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 위기의 순간에 지켜야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아가야 지역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고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총독이라고 해도 그 지역의 사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기 어려웠을 테니 무언가 일을 꾸미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새로운 총독에게 바울을 결코 그냥 둘 수는 없었던 위험한 자라고 하면서 공권력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지켜야 하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 위기의 순간에도 순종하려고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갑작스럽게 법정으로 끌려가서 자신에 대한 왜곡된 고발장의 내용을 듣게 되었던 바울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들었던 말씀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반문 바로 앞에서도 소개했던 것처럼 주님은 환상 중에 임하셔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작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일들을 보면 주님의 백성보다는 대적하고 비난하면서 위협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에게 하셨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입을 열어 증거하려고 했다는 것이지요. 위기의 순간에도 순종하려고 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 위기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습니다.
새롭게 부임한 총독은 그렇게 호락호락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요구했던 것에 장단을 맞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사람들은 바울 대신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잡아서 법정 앞에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태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갈리오 신임총독은 이런 일에 상관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다지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왜 성경은 이런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주목해야할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회당장 소스데네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본문에서 회당장 소스데네가 왜 두들겨 맞아야 했는지 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분명 은혜와 섭리 안에서 그냥 오는 위기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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