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주일설교 | 김종윤 목사 | 2022-0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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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우려되는 상황들로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만큼 작은 차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야 어찌되었든 국민들 사이에서는 서로에게 남아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합력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툭하면 터져 나오는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서 술렁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소동이 일어나든지 올바르게 반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또 다른 방식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다르다고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변화를 만들고 다름이 성숙을 가져옵니다.
∙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 벌이에 사로잡히면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됩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벌이는 중요합니다. 일이나 사업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수입이나 이익을 뜻하는 이 말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결코 함부로 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벌이에 사로잡히면 꼼짝달싹할 수 없습니다. 워라벨과 같은 어려운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벌이를 위하여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데메드리오가 이야기한 것처럼, 풍족한 생활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벌이에 손해가 있어서는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데메드리오의 말에 우려를 표하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주목하고 생각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 무엇이 정말로 큰 것인지 알면 달라집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있었던 아데미 신전은 헬라제국의 왕이었던 알렉산더의 후원으로 지어진 신전으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기둥의 높이는 두배 그리고 크기는 네 배나 되는 엄청난 건물이며 고대의 7대 불가사리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터만 남아있어서 겨우 상상 속에서만 짐작할 수 있지만 웅장했던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아데미 여신상은 인간 내면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도발적인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함께 외쳤던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런 외적인 형상들로부터 나온 것이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정말 큰 것이 무엇인 지 깨닫게 된다면 분명 다르게 고백할 것입니다.
∙ 무엇이든지 경솔하지 아니하여야 – 실수를 막기 위해서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들뜬 분위기가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정작 그곳에 모인 무리는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흥분한 무리들은 바울 대신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왔지만 이 또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모습이 유대인의 양식으로 보였기에 유대인들은 혹시나 하는 불통이 자기들에게로 향하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흥분한 이들은 에베소의 서기장이 출동하고 나서야 비로소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기관이 한 말에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소동을 견디고 이겨내려면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소동 속에서도 점검할 것은 분명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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