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사는 길은 따로 있다 | 김종윤 목사 | 2024-06-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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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제 에스더를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유달리 더웠던 유월 한 달 내내 우리는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 – 특히 끌려갔던 곳에서 돌아올 수 없었던 이들을 어떻게 돌보시고 인도하시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에스더 전체에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삶의 구석구석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 차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에스더의 마지막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하만이 계획해 놓았던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새로운 살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친히 길이 되어주시고 또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가시는 참 좋으신 주님의 은혜와 돌보심을 경험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길을 힘차게 걸어갈 지혜와 믿음을 얻으시길 기도합니다.
∙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 지혜로운 사람은 시작만이 아니라 끝도 생각합니다.
하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고 위력적이라고 하여도 결국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만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워두었던 장대에 달려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을 끌어 내려서 자기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드개를 향한 분노와 살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를 무너지게 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품었던 살의였습니다. 하만은 끝까지 자신을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마지막에 하만은 속수무책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만은 무엇이 지혜이고 또 무엇이 어리석음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은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줍니다. 세상에서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 최종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한번 더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 하만은 더 이상 없습니다. 하만의 최후와 함께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만이 계획했던 일들은 이미 반포된 조서와 함께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하만의 악한 꾀를 멈추기 위해서 에스더는 한번 더 왕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이 사라진다고 내 삶이 자연스럽게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삶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어있는 집은 위험합니다. 나갔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왕 앞으로 다시 나아갔던 에스더가 하만의 악한 꾀를 멈추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간구했던 것은 이미 내렸던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왕은 왕의 이름으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에 있었던 왕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사는 길이 없는 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에스더는 아무리 조건이 나쁘다고 하여도 사는 길이 따로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살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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