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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사랑이 길을 냅니다. 김종윤 목사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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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κατακρίνω) 란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 사람이나 그 행동 자체에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죄’란 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상대적으로 공동체의 도덕성과 순수성을 유지하게 하며 죄와 벌의 관계를 강조하여 절대적인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장치입니다. 죄를 정하지 않고는 그 죄에 대한 값과 책임을 요구할 수 없기에 율법에 따라 죄와 그에 따른 죄값을 규정하는 것은 죄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정죄의 프레임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죄와 인간에 대한 너무나도 단순한 이해일 수 있습니다. 죄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가 규정하는 것 이상일 때가 많습니다. 율법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 시험함이러라 – 조건을 찾으려고 하면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성전에 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예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지켜오고 세워왔던 모든 율법적인 가치들을 흔들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예수를 고발할 조건을 얻기 위하여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현행범으로서 붙잡혔던 이 여인은 당시 율법에 따르면 돌로 쳐서 심판해야 했습니다. 물론 몇 가지 추가로 살펴야 할 사항들이 있었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검토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살펴야 하는 요소들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결국 그런 식으로 하면 모든 일은 수단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 진짜 두려워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삶의 변화를 위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 여인과도 같이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난처하게 되었을까요? 율법의 규정을 말하면서 정죄의 프레임에 따라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할 것이고 질문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에는 결정이 다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면서 지체하신 주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겁니다. 주님의 말씀은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우리에게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감정이 아닌 말씀이 기준입니다.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사랑이 길을 냅니다.  


광포에 가깝게 치닫고 있던 시점에 하신 주님의 말씀은 상황을 일순간 바꾸어 놓습니다. 성난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자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 상황에서 주님은 다시 새로운 길을 말씀으로 열어가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분명한 것은 주님이 더 이상 정죄의 프레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나누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그냥 넘어가신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해도 죄는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결코 그 죄를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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