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다시 시작하려면 | 김종윤 목사 | 2024-1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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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는 투표가 있는 주말입니다. 이미 국민 대다수의 마음에서 탄핵이 이루어지고 법적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라 그런지 의외로 마음은 차분하게 보입니다. 대통령 고유의 권한 행사요 통치 행위였다고 하는 본인의 소명이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일반 백성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추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아직 투표 결과와 관련된 예견을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도 해결을 위해서는 가야 할 길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불거져 나온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들을 과연 어떻게 정리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위기 때마다 등장했던 한국인의 위기 극복의 DNA와 함께 우리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두루두루 임하길 기도합니다. ∙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정말 필요한 것은 땜질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이 표현은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을 향하여 했던 호통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런 거친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의 상황은 긴박하고 심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회개와 같은 삶의 방향을 되돌이키는 것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임박한 진노의 심판만 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우선 비는 피하고 봐야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근본적인 해결 없이 결국에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고 단기적으로는 피해를 줄일 수 있겠지만 결국 장기적으론 더 큰 손실을 가져 올 수 있게 됩니다. 땜질로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 변화를 위해서는 진지하게 묻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위기를 회피하게 되면 문제를 직면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나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믿음으로 어려움을 직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문제를 감당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안일하게 급한대로 진노의 심판은 피하고 보자고 하는 샘으로 나아오던 이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책망했습니다. 이런 민망한 책망을 들었던 이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뻔한 해답보다 차라리 진지한 고민이 담긴 질문이 난 이유는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과 그 의미에 대하여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 자신이 해야 할 사명만 다하면 됩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문제에 대하여 집중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은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소관도 아닌 일에 대하여 꼬치꼬치 개입하려고 합니다. 당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혹시 자신들이 기다리던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세례요한은 분명한 자세로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 뒤에 오셔서 하실 분을 구분해서 언급합니다. 자신이 해야할 사명만 다하면 그만입니다. 나머지는 그분이 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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