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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1일 2부설교_새 일을 위한 동력은 무엇인가? | 김종윤 목사 | 2026-0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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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런 모든 변화들은 각각 다르게 적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해 지는 것은 아무리 세상이 달라지고 변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내 삶 속에 과연 어떠한 바람이 불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살아내어야 할 당사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이 아쉽고 서운하다고 해도 오늘은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첫 날입니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어제는 역사(History)요 내일은 신비(Mystery)이지만 오늘은 선물(Present)이 될 수 있도록 의미있고 보람있는 하루 하루 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 겸손과 순종이 모든 의를 이루는 길을 엽니다. 주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 주일 교회력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사건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주현절(Epiphany)은 ‘나타남’ 또는 ‘드러남’을 의미하는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탄절이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사건이라면, 주현절은 그렇게 오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세상 앞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신 사건을 기념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일반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던 세례요한에게 정중하게 이제 허락하라고 권면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하지만 또 어떤 일들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때로는 허락이 필요합니다. 허락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 소통의 질이 달라져야 새날이 시작됩니다. 사실 세례요한이 당시 행하고 있던 세례는 죄를 회개하기 위한 세례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당사자가 자기 의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잠잠해집니다. 결국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힘들어도 하늘이 열리면 됩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들리는 게 다가 아닙니다. 소통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 새로운 날의 시작이었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관계와 정체성이 새 일의 동력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 있었던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 소리의 내용은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줍니다. 묵묵히 답답하고 힘들어도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히 부르심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약속과 권면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세상에서 어느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기 증명의 요구를 받습니다. 더욱 여러 가지 복합된 역할을 감당해면서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곤 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새 일을 감당하게 하는 동력이요 힘인지 이 하늘의 소리는 가르쳐 줍니다. 능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관계와 정체성이 바로 새일을 감당할 동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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