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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2부설교_변화를 감당할 힘은 무엇인가? 김종윤 목사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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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그런 것처럼 모든 변화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전과 달라서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는가 하면 낯설게 변해서 불편하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는 거지요. 이처럼 변화는 ‘기대’라는 빛과 ‘염려’라는 그림자를 동시에 데리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확실하지 않은 변화는 좀처럼 용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화들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반응이 빠르냐 느리냐 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빠르다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모두 끌려간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감당하는 것입니다. 감당하면 달라집니다. 과연 변화를 감당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 몰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앎의 문제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사실 결코 작지 않은 차이입니다. 알면 쉽습니다. 모르면 어렵습니다. 알면 그래도 할 만 합니다. 그런데 모르면 시작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감당할 것이 무엇이든지 사전에 그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계속해서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31,3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를 알고 있어야 안다고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몰라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정보의 확실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을 보내신 이의 확실성”을 더욱 견고하게 붙들고 변화를 감당했습니다.


∙ 와서 보라 … 그날 함께 거하니 – 시간을 들여 함께 머물러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증언은 다른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제자들 중에서 몇 사람은 세례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를 따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하는 간절한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그들을 깊은 사귐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어떤 것은 길 위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있는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시간을 들이며 함께하는 깊은 사귐이 필요합니다.


∙ 장차 게바라 하리라 –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르신 분이 감당하게도 하실 겁니다. 


머물다고 하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성령이 예수 위에 머물렀으며(32),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가 함께 머물기 시작했습니다.(39) 여기서의 머묾은 단순히 일시적인 체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격적인 동행과 관계의 지속성을 의미했습니다. 깊은 신뢰와 지속적인 친밀함 속에서 예수는 ‘알지 못하는 이’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랍비’에서 ‘메시아’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도 맹숨 맹숭하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부르신 분이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실 겁니다. 감당할 힘은 그분께로부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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